2024년 8월 14일 개봉한 영화 ‘행복의 나라’는 1979년 대한민국 현대사에 큰 충격을 안긴 10.26 사건의 또 다른 중심인물인 박흥주와 그의 변호인이었던 태윤기 변호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10.26은 일반적으로 김재규 중심의 내러티브로 소비되어 왔지만, 이 영화는 조명받지 못했던 ‘심복’ 박흥주와 그를 인간적으로 이해하려 했던 변호사의 시선을 중심에 두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실제 사건 기록과 인물의 심리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단순한 정치 영화가 아닌, 인간의 신념과 선택, 정의와 죄의 경계를 되묻는 묵직한 작품입니다.
1. 영화 '행복의 나라' 역사 속 ‘주인공 분석 ㅡ 박흥주의 재조명
‘행복의 나라’는 지금까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인 박흥주를 전면에 내세우며 시작합니다. 그는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최측근으로서 10.26 사건 당일, 궁정동 안가에서 벌어진 일련의 시해 과정에 함께했던 군인입니다. 그동안 김재규의 거사에 대한 동기와 철학, 정치적 배경은 여러 차례 조명되었지만, 박흥주라는 인물은 ‘심복’이라는 타이틀 외에는 구체적인 서사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이 공백을 깊이 파고듭니다. 극 중 박흥주는 단순한 명령 수행자가 아닌, 당대 사회와 권력 구조 속에서 진심으로 상관을 따랐던 인물로 그려집니다. 영화는 그의 과거 군 경력, 김재규와의 만남, 충성심, 그리고 명령 수행 직전의 내적 갈등을 드라마틱하게 전개합니다. 특히 궁정동으로 향하던 군 차량 내부, 시해 직전 대기실에서의 침묵, 발포 이후의 공허한 시선 등은 그의 선택이 얼마나 인간적으로 복잡했는지를 강하게 전달합니다. ‘박흥주는 살인자인가, 아니면 체제의 희생자인가’라는 질문은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극은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리기보다,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면서 관객 스스로 판단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는 정치적 해석을 강요하기보다는, 인간 개개인의 윤리성과 선택의 무게를 성찰하게 만드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또한 영화는 박흥주가 감옥에 수감된 이후의 시간을 집중 조명합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점점 혼란을 느끼는 그의 심경 변화, 참회,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흔들리지 않는 충성심은 단순한 악인 캐릭터가 아닌 입체적 인물로서의 박흥주를 만들어냅니다. 이는 대중이 그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하며, 진정한 ‘사람의 이야기’로서의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2. 스토리 갈등 구조 : 정의, 법, 양심의 충돌
‘행복의 나라’에서 또 하나의 중심축은 바로 박흥주의 국선변호를 맡게 된 태윤기 변호사입니다. 태 변호사는 실존 인물로, 당시 군사재판이라는 불합리한 재판 구조 속에서도 피고인의 인간적 권리를 끝까지 지키려 했던 인물입니다. 영화는 그의 시선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 ‘법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처음 태 변호사는 ‘살인범의 변호’라는 사회적 낙인과 주변의 냉소 속에서 주저하지만, 점차 박흥주라는 인물의 진심을 마주하며 태도를 바꾸게 됩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매우 냉랭하게 그려지며, 태 변호사는 진실을 듣기보다는 ‘할 말을 정리하라’는 식의 행정적 접근을 보입니다. 하지만 박흥주의 한 마디 “나는 김 부장을 따랐을 뿐입니다”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이후 영화는 두 인물의 관계가 단순한 법정 대리인과 피고인의 관계를 넘어, 인간 대 인간의 대화로 확장되는 과정을 그려냅니다. 특히 수감 중 이뤄지는 몇 차례의 면회 장면은 극의 긴장과 감정을 고조시키는 중심축으로 작용합니다. 감옥 안의 밀폐된 공간, 철창 너머로 주고받는 대사 하나하나는 극적인 몰입감을 제공하며, 두 인물 모두가 ‘진실’이라는 가치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느끼게 만듭니다. 태윤기 변호사는 법정에서 불리한 상황임을 알면서도, 피고인의 진술과 심리를 정확히 전달하려 애씁니다. 그는 “모든 진실은 법정에 올려져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움직이며, 군부가 주도한 정치 재판의 형식주의와 싸웁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싸움이 결국 무력하게 끝날 수밖에 없었던 현실도 함께 보여줍니다. 이는 한국 현대사의 법치주의가 처한 현실을 되묻는 동시에, 법조인의 양심이 지닌 한계와 가치 모두를 조명하는 장면들로 구성됩니다. 결국 박흥주와 태 변호사의 관계는 ‘행복의 나라’라는 영화 제목이 지닌 반어적 의미를 더욱 강화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이 나라는 누구에게, 어떻게 행복한가?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영화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지만, 질문은 남깁니다.
3. 감상평 : 기억, 용서, 그리고 역사의 방식
‘행복의 나라’는 단지 10.26 사건을 재현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미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책, 기사 등을 통해 알려진 이 사건을 소재로 삼되, 영화는 ‘우리가 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특히 박흥주와 태윤기라는 실존 인물을 중심에 두면서, 사건의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진실을 누구의 시선으로, 어떤 감정으로 이해하느냐’는 점을 강조합니다. 영화는 몇몇 플래시백을 통해 사건 당일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지만, 보다 많은 시간을 감옥 안의 회고, 법정 진술, 감정의 변화에 할애합니다. 이러한 구성은 단순한 팩트 중심의 영화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윤리적, 철학적 갈등을 중심으로 사건을 재조명하려는 의도를 보여줍니다.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태 변호사의 독백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가 올바른 일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끝까지 인간이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가장 큰 교훈이었습니다.” 이 대사는 비단 박흥주 한 사람에 대한 평가를 넘어서,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과거’를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집니다. 또한 영화는 ‘용서’라는 주제를 조심스럽게 다룹니다. 피해자 유가족이나 국민의 감정이 남아있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누군가의 ‘회개’와 ‘참회’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영화는 정면으로 질문을 던집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구원과 사회적 정의가 충돌할 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유도합니다. 영상미 역시 정제되어 있으며, 1970~8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를 충실히 재현하면서도 과장되지 않게 묘사합니다. 복고풍을 억지로 끌어오기보다는, 조명과 음향, 공간 구성 등을 통해 시대의 무게감을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재판장 내부, 교도소 면회실, 70년대 군부 사무실 등은 모두 극적인 몰입도를 더해주는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2024년 8월 14일 개봉한 ‘행복의 나라’는 단지 10.26 사건의 또 다른 이야기 그 이상입니다. 이 영화는 한 인물의 선택과 또 한 인물의 이해, 그리고 그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던져야 할 질문을 담아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충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가는 ‘행복한 나라’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영화가 던진 질문은 앞으로도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