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제곱미터》는 2023년 개봉한 한국 영화로,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한 부부의 일상을 통해, 공간의 가치와 사람의 존엄성, 그리고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불균형한 삶의 구조를 조명하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 도시화와 주거문제, 세대 간 갈등까지 현실의 여러 사회적 요소를 진지하게 다루며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 '84제곱미터'의 시작점 – 평범한 공간, 평범하지 않은 현실
영화 《84제곱미터》는 제목 그대로 84㎡, 즉 흔히 말하는 '국민 평형' 아파트를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이 아파트는 대한민국 중산층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이며, 많은 이들이 꿈꾸는 ‘내 집 마련’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익숙한 공간에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현실을 파헤치며 조용히 시작됩니다. 맞벌이 부부인 ‘지훈’과 ‘수진’은 결혼 5년 차에 어렵게 청약에 당첨되어 서울 외곽 신도시에 새 아파트를 장만하게 됩니다. 외형상으론 축하받을 일이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기쁨보다는 막연한 불안과 의문이 먼저 찾아옵니다. ‘이 공간은 과연 우리가 꿈꾸던 삶의 장소인가?’라는 질문이 서서히 부부 사이에 틈을 만듭니다. 초반부는 분주한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의 어색한 인사,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 SNS에서의 ‘우리 집 인증샷’ 등 일상적인 풍경으로 구성됩니다. 그러나 이 일상의 반복은 곧 공간이 주는 무언의 압박감으로 전환되며, 84㎡라는 공간이 심리적 감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지훈은 이 집을 ‘성취의 상징’으로 여기고, 수진은 안정적 삶의 수단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아파트 입주 이후, 서로의 기대는 충족되지 않고, 오히려 삶의 리듬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극적인 사건 없이도 정서적 충돌과 침묵 속에 점차 관계가 멀어지는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냅니다. 《84제곱미터》는 사건보다 정서에 집중한 영화입니다. 분양가 상승, 대출 문제, 입주민 간 갈등 등 현실의 민감한 이슈들이 부드럽게 배경으로 녹아들며, 부부가 ‘같은 공간 안에서 멀어지는’ 아이러니를 강하게 부각시킵니다.
인물특성과 심리 분석 – 무너지는 이상, 흔들리는 관계
지훈과 수진은 ‘정상적인 중산층 부부’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그들의 내면을 통해 ‘정상성’이라는 단어 자체의 허구를 비판합니다. 지훈은 대기업에서 근무하며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이어가지만, 회사 내부의 위계와 경쟁에 지쳐가고 있습니다. 그는 이 집을 안식처로 기대하지만, 오히려 그 공간이 더 큰 압박으로 작용하며 숨통을 조여옵니다. 반면 수진은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현재는 재택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아내, 며느리, 여성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공허함을 느낍니다. 그녀에게 집은 안식처가 아니라 일상의 책임과 기대가 교차하는 곳으로 전락합니다. 이 부부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대화하지 않습니다. 말보다는 침묵, 시선의 회피, 생활 패턴의 충돌을 통해 감정의 간극이 드러납니다. 영화는 이러한 ‘비언어적 갈등’을 주방에서의 엇갈림, 거실 조명의 조절, 냉장고 문 여닫기 등의 디테일한 장면으로 표현하며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조연들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같은 층의 부부, 홀로 사는 노인, 입주민 대표 등은 아파트라는 동일한 구조 속에서 각기 다른 삶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누구에게는 집이 소외의 장소, 다른 이에게는 자산 증식의 도구가 되며, 이들의 시선은 ‘공간 안에도 계급이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합니다. 지훈과 수진은 결국 공간에 대한 환상을 버리게 됩니다. 관계가 점차 무너지고, 삶의 균형이 깨지면서 그들은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정말 이게 우리가 원했던 삶이었을까?”라는 자각은 영화 후반부에서 절정에 이르며, 관객 또한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사회적 관점과 메시지 – 집은 삶의 기반인가, 소비의 대상인가?
《84제곱미터》는 개인의 서사를 넘어 강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자본주의의 메커니즘, 계급 고착화, 주거 불평등 문제를 입체적으로 짚어냅니다. 첫 번째 메시지는 ‘내 집 마련 신화’의 허상입니다. 많은 이들이 내 집을 가져야 안정된 삶이 보장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영화 속 지훈과 수진은 집을 소유함으로써 자유로워지기는커녕, 더 많은 빚과 책임 속에 갇히게 됩니다. 아파트는 더 이상 삶의 도구가 아니라, 관리하고 갚아야 할 프로젝트로 전락합니다. 두 번째는 ‘공동체의 해체’입니다. 아파트는 각 가구의 프라이버시는 보장하지만, 공동체적인 정서와 연대는 점점 사라져 갑니다. 이웃은 이름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서로는 오히려 감시하거나 경계의 대상으로 인식합니다. 영화는 이러한 거리감 속에서 인간관계가 어떻게 파편화되는지를 날카롭게 묘사합니다. 세 번째는 세대 간, 계층 간 주거 격차 문제입니다. 영화는 젊은 부부가 어떻게 빚을 내어 집을 마련하고, 기성세대가 집을 통해 자산을 불리는 구조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특히 신도시의 아파트라는 배경은 외적으로는 ‘깨끗하고 현대적’이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현실은 불평등과 소외의 구조임을 암시합니다.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라를 통해 아파트 단지 전체를 조망합니다. 각 창에서 나오는 불빛은 각각의 삶을 상징하며, 영화는 조용히 묻습니다. “당신이 사는 공간은 정말 당신만의 것인가?” 이 질문은 단지 집값이나 인테리어를 넘어서, 집이 곧 ‘삶의 구조’를 형성한다는 본질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84제곱미터》는 도시화가 만들어낸 구조적 모순을 날카롭게 드러내며, 공간의 의미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존엄성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작품입니다.《84제곱미터》는 단순한 주거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집이라는 틀 안에서 사람과 사회, 자본과 정체성의 문제를 폭넓게 아우르는 영화입니다. 눈에 보이는 면적보다 훨씬 넓고 깊은 질문을 던지며, 관객에게 오늘 우리가 서 있는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도록 유도합니다. 집이 단지 ‘사는 곳’이 아닌, 삶 그 자체라는 사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 영화를 반드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